#34 magazine ybp 관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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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민경
magazine.ybp의 에디터들은 세상을 관찰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세상이 놓치기 딱 좋은 찰나를 줍는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장 속 불빛, 친구의 연애가 끝나는 순간, 말끝을 흐리는 동료의 표정 같은 것들.
그들은 그것을 줍고, 약간 다듬고, 가볍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한다.
“이렇게 모아 보니 더 재밌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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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주운 찰나들이 말이 되는 순간들을 가까이서 종종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젊고, 가난하고, 아직 덜 성공한 우리를 좋아했다. 열정과 피로 사이에서 비실거리면서도 1인분은 거뜬히 해나가며 편의점 맥주와 함께 철학 얘기를 하는 사람들. magazine.ybp가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은 오래된 수동 카메라 같다. 피사체를 정면에서 응시하기보다, 살짝 비켜서 보거나 망설이다가 셔터를 누른다. 감정을 선명하게 포착하지도, 노골적으로 들이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흔들림 덕분에 더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magazine.ybp의 에디터와 와인을 마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좋아하는걸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하소연이 섞인 회고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 매거진은 그런 허물들을 무너뜨리는 공간이다. 그들은 좋아한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꺼내는 데 익숙하다. 그렇게 에디터들이 차곡차곡 모은 찰나들을 하나씩 꺼내며, 좋아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있던 취향과 말들—말할 줄 몰랐던 마음들—을 그들의 문장에서 먼저 만나게 된다.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 고집하는 향수, 자주 입는 옷과 색, 유난히 좋아하는 음식, 오래도록 애정하는 책이나 아티스트. 누가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게 어울리는 것들. 그런 것들로 채워진 하루를 상상하면서, 나도 자연스레 예전의 취향들을 떠올리게 됐다.
민경의 이야기
그 시작은 홍콩에서였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이 빠르게 지나가는 흐린 필름처럼 살았다. 언어도, 사람도, 나 자신도 선명하게 잡히진 않았지만, 또렷한 감각을 남기는 찰나들은 분명 있었다. 수업이 끝난 밤, 센트럴 골목 끝자락에 앉아 친구들과 술마시며 나누던 대화, 거리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저녁의 습기. 매일 아침, 긴장과 설렘을 안고 출근하던 인턴 시절은 그 흐릿한 필름 중에서도 유난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모르는 게 많았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고, 하루를 끝낼 때면 어떤 식으로든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 들었다. 회의실에서 주워들은 용어 하나, 실수 끝에 깨달은 포인트 하나가 모두 새롭고, 재미있고, 나를 채우는 조각처럼 느껴졌다. 업무는 치열했고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 열정이 버겁진 않았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래서 더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의 나는 honne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대중적인 선택이지만, 그냥 그 노래들이 뭔가를 끌어내기보다, 내 일상과 속도를 따라 조용히 곁을 지나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 시절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배경음 같은 존재. magazine.ybp의 홍콩편 기사를 읽을 땐, 퇴근하던 밤거리의 소음과 향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누군가의 문장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지나치기만 했던 예쁜 찰나들을, 지금은 붙잡아 오래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몇 년 후,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또 어떤 찰나와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훨씬 단정하고 조용해서 감정의 밀도는 더 깊어진 것 같다. 도시의 리듬이 다르고,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도 다르다. 무엇보다 커리어적으로도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매일이 새롭기만 했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익숙한 루틴 속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다듬어가는 시기다. '배우는 중'이라는 말보다는, ‘쌓아가는 중’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시기이다. 불안은 줄었고, 그만큼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취향을 들여다보는 방식도 달라짐과 동시에 음악 취향도 바뀌었다. 플레이리스트를 흘려듣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감정에 있고 싶은지를 고른다. 그래서 요즘의 취향은 장르나 스타일보다는 ‘어떻게 듣느냐’에 가깝다. 노래 하나, 앨범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그 짧은 몇 분이, 하루의 기분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어떤 이미지나 소리에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순간이 생겼다.
그런 감각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눈길이 닿은 아티스트가 있다. 런던 기반의 Issy Wood(@isywod)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건 2년쯤 전, 서울에서 열린 전시를 보고 나서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림들 앞에서 이상하게 오래 멈춰 서 있었다. 그녀는 찰나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좀 흐릿하고 어딘가 망설인 흔적처럼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게 좋았고 불분명한 붓 자국들이 주는 이상한 솔직함이 좋았다. 너무 정확하거나 예쁘게 그리려 하지 않아서 더 눈에 남았다.
그 전시장에 흐르던 음악이 유독 잘 어울린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음악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림과 음악이 분리된 감각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시각과 청각이 같은 결을 따라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 감정은 오히려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들을 앨범 커버로 사용한다. 이미지와 사운드가 나란히 놓이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물결 속에서 잔잔히 뒤섞이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그림을 떠올리며 노래를 들었고, 어떤 날은 음악을 들으며 그림이 다시 떠올랐다. 빠르게 체감되는 매력은 아니지만, 계속 생각나고, 자꾸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것. 이상하게도, 그런 감각이 요즘의 나에게 꼭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나 음악이나, 그런 존재들이 요즘은 더 좋아진다. Issy Wood는 그래서 지금 내 취향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름이다.
여전히 honne의 음악을 들을 때가 있다. 홍콩에서의 나는 하루하루를 그냥 지나치듯 살았다. 뭘 남기거나 기억하려 하기보단, 그저 다음 날로 넘어가기 바빴다. 음악도 그랬다. 뭘 듣는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익숙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honne는 배경에 가까웠다. 현재의 나는 무엇을 들을지 내가 직접 고르고, 그 음악에 따라 하루의 무드가 달라지기도 한다. 음악을 선택하는 방식 하나만 봐도, 예전보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취향과 감정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주는 문장들을 나는 magazine.ybp에서 자주 만난다. 이상하게도, 늘 내가 막 생각하려던 것, 혹은 아직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그들은 먼저 적어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갑자기 선명해지고, 이름 붙이지 못했던 것들이 정리된다. ’추억 배당금‘과 ‘기름 방울‘ 같은 것들. 정리되어 오래 보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덜 흔들리고,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모은 ‘좋아하는 찰나’들과 우리를 하나로 묶는 끈 같은 역할을 magazine.ybp가 해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 매거진은 어느새 독자들의 일상에 작은 틈을 낸다. 그 틈으로 경험이 스며들고, 취향이 자란다. magazine.ybp를 통해 우리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를 대신 주워서 적어준다. 누군가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기록해준다는 건, 꽤 큰 위로다. 그래서 그들이 건네는 문장들은 그래서 늘 조금 천천히 도착한다. 난 magazine.ybp가 오래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순간들을 계속 이렇게 조심스럽게 주워 담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