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출근길에 받은 메시지

에디터: 황남규 @nwangerd

몇 주 전, 출근길에 바다 건너 사는 친구로부터 DM을 하나 받았다. 내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Y Combinator의 창업가인 폴그레이엄이 작성한 포스트에 대한 링크였다. <Cities and Ambition> 라는 포스트였고, 전문은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이번 기사를 읽기 전 전문을 확인하는 것을 권장한다).


폴 그레이엄의 포스트가 말하는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시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인간군상이다.
  2. 그렇기 때문에 그 도시가 추구하는 ‘야망’이 있으며, 이는 그 도시가 보내는 메시지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3. 각 도시는 조금씩 다른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며, 그 도시에 살지 않는 이상 100% 이해하기 어렵다.
  4. 주변 환경과 일치하지 않는 야망을 개인이 이끌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야망의 파악과 실현을 위해서는 메시지 주파수가 맞는 도시를 찾는 것이 꽤 중요하다.


포스트를 읽고 내가 살고있는 싱가포르가 보내는 메시지를 생각해보았다. 외국인 + 직장인이라는 한정적인 사회 생활 반경이 주는 어느 정도 곡해된 메시지일 수 있지만 이것 또한 도시가 보내는 메시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 “당신은 이 도시가 정해놓은 규칙과 포맷에 맞춰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얼른 가족의 형태로 정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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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는 내가 굳이 폴 그레이엄의 포스트를 통해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싱가포르에서 사는 3년 반의 기간 동안 내게 지속적으로 전달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도시가 나와 주파수가 맞냐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즉 싱가포르는 돈을 모으면 떠날 곳으로 꽤 오랜 기간 내게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 20대 후반을 지나 30대 초반으로 진입하며 - 이 메시지가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떨어지긴 했으나 작년 말 PR을 신청했었으니 말 다했다. 이런 나의 변화는 편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이질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는데, 때에 따라 편함이 불편함을 넘어서기도, 또는 불편함이 편함을 넘어서기도 했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기저에 깔려 있는 불편함이 있고, 이는 ‘가짜 안정감에 속지 말자’ 라는 내 올해 모토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불편함은 내가 찾고자 했던 야망, 즉 내가 도시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가 이 도시를 만나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내지는 그 불협화음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내 메시지가 보내는 경고음일까?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얼마나 살 것이며, 정말 정착하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계속 직장을 다닐것인가, 아니 애초에 계속 다닐 수나 있는 것일까? 

고민을 좀 더 펼쳐보자면 이런 형태의 고민들도 있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며 무엇을 바라는걸까? 내가 원하는 것을 회사가 채워주지 못한다면 나는 이 갈증을 어디서 해소해야할까? 

왜 나는 지금 당장 창업을 하지 않는 것이며, 무엇이 내 엉덩이를 무겁게 하는것인가? 


결국 이 고민들의 본질에 다가가보면, 내가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 회사 일을 포함하여 그 이상 무언가 더 찾고자 하는 - 이 갈망이 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 즉 내 야망의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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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보니, 뭐 바로 싱가포르를 떠날것만 같지만 당장 그렇게 하진 않을 것 같다. 결국 이 기사를 쓰게 된 계기도 싱가포르에서의 출근길에서 싱가포르에서 알게된 친구가 보내준 글을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한 것이 아닌가. 서울로 돌아간다고 한들, 회사를 바로 때려치우고 자연스럽게 창업을 하게 될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기에는 나이가 들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으며, 나 또한 내가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가운데서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선택이라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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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작성하며 ybp 독자로부터 각 도시에서 저마다 느끼는 메시지를 받아 보았다. 그 메시지들을 내 코멘트와 함께 이번 기사에 함께 공유하니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다.

 

  • 서울: "일만해ㅠ"
    • Editor’s comment: 야근에 지친 어떤 독자가 생존 신호를 보낸 것 같다. 비단 야근 뿐이랴! 서울이라는 커다란 철장 안에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필의 사람들이 살아가며 높아질 대로 높아진 - 그런데 이상한 방향으로 높아진 - 스탠다드와 그에 따른 비교가 서울 사람들을 오늘도 괴롭힌다.
  • 홍콩: "빨리 빨리 움직여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그게 일이든 여가든 인생이든"
    • Editor’s comment: 작년에 놀러갔던 홍콩은 한눈에 봐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우후죽순 생긴 건물들과 그 속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싱가포르와는 꽤 다른 분위기를 풍겼었다. 도시가 나서서 나를 재촉하는 환경에서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서울과 비슷하려나?
  • 뉴욕: "소신있게 살고 힙해져라"
    • Editor’s comment: Vol.2 에서 여러번 다뤄진 도시 뉴욕은 정말 다이나믹의 끝판왕인 것 같다. 길을 걷다보면 타의로 인해 1분에 한번씩 콘텐츠가 나오는 이 도시는 정말 대체 불가능함이 있는 것 같다. 젠장 온세상이 TJ야! 
      • 개인적으로 그 소신과 힙이 좀 덜해져도 될 것 같다… 
  • 오스틴: "다이나믹하고 다양한 사람들 속 나다움을 찾아라" | <Keep austin weird>라는 슬로건을 갖고 오스틴에 사는 개개인 모두가 각자의 weirdness를 갖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그래서 이곳에선 길거리에서 내가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나다움을 지킬 수 있다. 무엇보다 오스틴은 미국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아메리칸 라이프를 느낄 수 있는 도시 중 하나다. 낮은 텍스로 많은 테크기업들이 이전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 속에서도 미국의 아날로그 모습을 유지하여 발전과 아날로그 그 사이 어딘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 Editor’s comment: 올 초 방문했던 오스틴은 자율택시인 waymo와 카우보이 햇을 같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메시지처럼 정말 새로움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weirdness가 나다움으로 받아들여진다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도시다.
  • 도쿄: "좀 느리고 불편해도 참아 도쿄잖아"
    • Editor’s comment: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도 일본은 여러 면에서 정말 다르다. 일본인이 “일본은 ~~해요” 라고 설명한다면, 그 어떤 외국인도 그에 대해 반박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일본은 자기만의 견고한 울타리를 쌓고 그 안에 무엇이 오든 기존의 시스템에 녹이거나 혹은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이상 도쿄를 좋아해서 16번 방문한 사람의 뇌피셜 코멘트였다. 도죠~
  • 상해: "성장 동력은 노동력. 개성 빼면 시체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동네"
    • Editor’s comment: 작년 상해 여행을 통해 중국을 처음 가보았는데,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정말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었다. 일단 사람들의 패션이 너무 멋있었던 기억이 있어, 개성 빼면 시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아주 조금은 알것만 같다. 다만 독자분의 메시지를 보니 996은 상해에도 적용되나보다.
  • 싱가포르: "<Singabore>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눈에 불 켜고 깊숙이 찾아 보면 싱나는 일이 많은 곳!"
    • Editor’s comment: 같은 도시도 이렇게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결국 그 도시의 매력인 것 같다. 나도 싱나는 일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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