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Music is My Life
Share
점심시간이나 스몰토크에서 가장 흔히 오가는 주제 중 하나는 아마 ‘여행’일 것 같다. 특히 서울만 한 크기에 연중 내내 더운 싱가포르에서는, 로컬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여행이란 단어가 삶 속에서 중요한 아젠다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집순이라 여행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결심하게 되는 몇 가지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다. 작년에는 ybp와 함께 홍콩에서 열린 혁오 콘서트를, 발리에서 Jamie XX를 볼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서울 출장 마지막 날 열린 Jorja Smith의 콘서트도 관람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서울 근교에서 열리는 여러 음악 페스티벌들을 찾곤 했다.
요즘처럼 짧은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로지 음악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에너지가 좋다. 10초짜리 음악이 아닌,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한 아티스트의 공연에 몰입할 수 있어 좋다. 몸치인 내가 이상한 춤을 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좋아요’한 음악에 대해 ‘왜’를 얘기할 수 있을만큼 깨어 있는 의식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여행’의 본질이 탈일상과 재충전이라면, 나에게 이런 고퀄리티 몰입의 시간이야말로 가장 여행다운 순간이다. 이는 내가 올해 의식적으로 하고 싶은 일과도 맞닿아 있다. 한 소설가의 삶을 담은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속 작가의 말을 빌려, “시는 공상과 몽상으로 씌어지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씌어진다는 말이다. 습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처음 보는 것인 양 생생하게 볼 때, 그저 흘리듯 듣는 게 아니라 귀를 기울여 들을 때 시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 그러니 몸이 생각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셈이다.” 별 생각 없이 귓구녕에 쑤셔넣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ai가 추천해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온 감각을 기울여 듣고 싶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내가 가고 싶은 음악 페스티벌들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선정 기준은 크게 2가지이다.
1) 라인업, 대중성보다는 로컬 혹은 신인 아티스트에게도 함께 기회를 주는 곳이 좋다. 티켓 파워만 고려하는 것이 아닌 본인들만의 컨셉을 가지고 라인업을 구성하는 곳이 더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2) 베뉴, 도시보다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때 걸리는 건물 하나 없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색만 들어올때 확실히 탈일상적인 순간들이라고 느낀다. 주민 대상으로 티켓을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거나 오픈 무대를 두어 지역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다면 완전 플러스.
01 ‘Primavera Sound (프리마베라 사운드)’
출처: Catalan news
출처: 프리마베라 사운드 공식 웹사이트
매년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로, 인디 락, 일렉트로닉, 팝,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큐레이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 장르에서 상업성 보다는 음악성과 아티스트가 음악씬에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라인업을 구성한다. 그래서 낮에는 팝 음악을 듣다가도 저녁에는 테크노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처음 프리마베라 사운드에 대해 알게 해준 무대가 23년도 레드벨벳의 무대를 통해서였는데, 아시아 밖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한국의 K팝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것을 보며 ‘이렇게 열려 있는 페스티벌이라니?’ 라는 생각이 계기가 되어 눈여겨 보게 되었다. 한국 밴드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카겔도 작년에 무대에 올랐다. 또 Primavera Pro라는 별도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도 한다고 한다.
실은 올해 열리는 프리마베라 사운드의 5일짜리 full festival ticket을 이미 작년 10월쯤 구매해두었다. 그리고 공연 5개월 전인 1월에 매진 기사가 떴으니 조금만 늦었어도 내년을 기약했을 것이며, 사실상 몇개월치의 기대를 누적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페스티벌일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를 통해 프리마베라 사운드 티켓 구매에 일조한 무대들을 더해본다.
Boiler room (2004년)
DJ Ramon Sucesso | Boiler Room x Primavera Sound Barcelona x CUPRA
*매년 보일러룸과도 협업하여 디제잉 무대를 꾸민다. 전년도에는 브라질,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출신의 디제이들이 출격했다.
Tame Impala - Let it Happen (2022년)
Let it Happen - Tame Impala (Nos Primavera Sound 2022)
올해는 작년 Brat 앨범으로 히트를 친 Charli XCX가 트로이 시반과 함께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선보인 적이 없는 SWEAT 무대를 보일 예정이다. 더불어 25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며 아티스트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조명하며, 레이블의 책임과 지원에 대해 요구하는 소감으로 회자된 Chappel Roan과 ‘Espresso’ 로 본인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곡을 만난듯한 Sabrina Capenter도 헤드라이너로 설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듣는 LCD soundsystem, floating points, nourished by time, magdalena bay도 라인업에 있어 구매 결정에 일조했고, Amelia Lens의 빡센 테크노와 floating points의 재즈와 앰비언트가 섞인 일렉트로닉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들을 수 있다니? 하는 기대감과 걱정을 반반씩 가지고 있다. 실후기는 이후에 한번 더해보겠다.
02 ‘시드포솔렌 (Sydforsolen)’
출처: 시드 포 솔렌 공식 웹사이트
매년 8월 코펜하겐 외곽의 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로, 2022년 시작된 신생 페스티벌이다. 그럼에도 작년에는 Fred Again.., Jorja Smith가, 재작년에는 Peggy Gou, Aphex Twin, Bon Iver가 헤드라이너로 섰으며, 팝부터 재즈까지의 장르를 아우르는 유럽 베이스의 신진 아티스트들의 무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서울재즈페스티벌 같은 도시의 공원에서 열리는 작은 페스티벌인데,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서 관람해야 하는 아티스트를 볼 수 있는 느낌이다. 그 바이브가 궁금하다면 필자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보았던 방문객의 유튜브 영상이 도움이 될 것 같아 공유한다.
03 ‘오가닉 (organik)’
출처: 오가닉 공식 인스타그램
출처: minimal collective
대만의 북쪽 해안 지역인 시먼에서 매년 4월 개최되는 전자 음악 페스티벌로, 2012년에 시작되어 벌써 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시 자연과 음악의 조화를 추구하는 이벤트이다. Syd for solen와 다른 점은 다루는 음악 장르가 전자 음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그안에서도 딥 테크노, 앰비언트, 하우스 등 다양한 서브 장르를 커버한다.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의 내노라하는 디제이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셈이다. 국내의 에어하우스가 근 몇 년새 인기를 많이 끌었는데, 국내 DJ에 국한되어 있고 매년 크게 바뀌지 않는 라인업이 아쉬웠던터라 organik 같은 스케일의 페스티벌에 주목하게 된다. 다만 라이브 공연 영상이나 후기가 많이 없어 티켓 구매까지는 여정이 조금 남았다. 싱가포르에서는 Rasa space에서, 국내에서는 서울대 파워플랜트에서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어, 가까운 도시에서 열리는 파티를 먼저 가보면 좋겠다.
04 ‘Fuji rock festival (후지 락 페스티벌)’
출처: 후지락페스티벌 공식 인스타그램
일본 최대 규모의 야외 음악 축제로, 매년 7월 말 도쿄 근교인 니가타현의 한 스키리조트에 인접한 산에서 3일간 개최된다. (이곳은 후지산과는 멀리 있는 곳이다.) '자연과 음악의 공생'이라는 테마 아래 산 속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탈리나 토리노에 기반을 두고 있는 Yves Tumor가 아시아에서 공연을 하고, 그게 23년도 후지 락 페스티벌이었다는 점 때문에 이 페스티벌을 접하게 되었다.
Yves Tumor를 초청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락'을 강조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락뿐만 아니라 팝,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일본 국내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함께 볼 수 있다.
‘자연’도 이 페스티벌에 빼먹을 수 없는 키워드인데, 후기를 찾아보면 한국에서부터 텐트와 캠핑의자까지 챙겨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페스티벌 기간 내내 캠핑 사이트에서 야영을 하기도 하고, 무대와 무대 사이에 계곡에서 더위를 식힌다든지, 미러볼로 꾸며진 산행길을 오른다든지하는 일들은 후지 락 페스티벌의 흔한 풍경이다. 멀리 있는 무대는 곤돌라를 타고 이동한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온가족이 함께 놀러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이처럼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페스티벌이 얼마나 있을까. 남녀노소 잔디와 흙을 밟으며 음악을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이벤트라니 살면서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페스티벌로 등극했다.
올해는 Fred Again.., VULFPECK, Vampire Weekend가 헤드라이너로 설 예정이며, 혁오 & 선셋롤러코스터, 바밍 타이거, 실리카겔 - 자랑스러운 한국 밴드들 - 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