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굿바이 더맵시.

Editor: 황남규 @nwangerd


대학교 시절 9월 1일이 기다려지곤 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긴팔을 슬슬 꺼내 입어도 “얘 계절감 없이 또 이러네?” 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시기,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겹게 입던 반팔에서 스웻셔츠와 후디로 넘어가는 시점이 그렇게나 좋았었다. 

(2-3년 후) 인턴을 시작하며 처음 ‘월’급을 받게 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가지고 싶은 옷을 쇼핑하기 시작했다. 옷을 정하고 2-3달 월급을 모은 뒤 에센스, 매치스, 파페치 등등 여러 쇼핑 플랫폼을 들락날락하면서 최저가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구입했었다. 
이렇게 옷을 구입하다 보니 구체적인 취향과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일본 브랜드들이 그렇게 좋았었다 (지금도 좋아한다). 일본 브랜드의 옷들은 대부분 직접 일본에서 택스 리펀을 받고 구매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데,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주 도쿄에 가서 옷을 구매하고 있다. 
인턴 및 사회 초년생 때 옷을 사러 도쿄에 가면 무엇보다 한정된 예산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숙소는 당연히 1인실이고 최적화된 쇼핑을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숍과 제품을 보고 마지막 날 구매할 제품들을 최종 결정하여 구매하곤 했었다. 
이때 제품 선정을 위한 나름의 3 원칙도 있었는데 바로 1) 가격, 2) 유틸리티, 3) 디자인 이다. 3가지를 모두 적절히 만족하는 제품만 구매하자는 것이었다 (찾기 나름 힘들다).

이렇게 나는 나름 옷에 애정을 가지고 또 열심히 투자하면서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 갔고 남들이 보면 비슷비슷한 옷을 꽤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나에게 다음과 같은 2가지 악재가 발생했다.

1) 4계절 국가에서 1년 내내 여름인 싱가포르로 이주를 했다.
2) 심지어 몸무게도 지금보다 20kg 정도 더 쪘다.

위 악재들과 함께 21년 말부터 23년 말까지 패션 리세션을 겪고 나서,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천천히 적응을 하며 이곳이 집으로 느껴질 무렵 몸무게도 다시 정상을 되찾고 옷에 대한 의욕을 되찾았다.

내가 10년간 쌓아온 취향을 지키고 young & broke의 소신을 다하고자 24년 초에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바로 싱가포르 남성 패션 릴스 계정 더맵시(@_themepsi)이다.


1. About @_themepsi

지금은 비공개 처리되어버린 이 인스타 계정은, 내가 매일 출근하며 입은 ootd를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찍어 간단한 나레이션과 함께 릴스로 올리던 계정이다. 큰 손가락으로 폰에서 영상을 편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이 세상 모든 릴스 크리에이터에 대한 무한 리스팩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열심히 계정을 운영했었기에 쌓인 릴스가 20개나 되는데, 이는 크게 3가지 이유 덕분이다. 무언가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점과 우리 회사 프로덕트를 공부한다는 뿌듯함 덕에 옷을 죄책감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첫 번째이다. 그리고, 남성 패션을 다루는 크리에이터가 없는 싱가포르에서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창한 희망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내 ootd를 자랑할 수 있다는 소소한 즐거움이 세 번째 이유이다.

물론 도저히 안 나오는 조회수 덕분에 싱가포르는 남성 패션 크리에이터 블루오션이 아니라 수요 자체가 없는 시장이라는 생각에 계정은 결국 접게 되었지만, 더맵시는 지루한 싱가포르에서 24년도 초를 꽤 재미있게 보내게 해준 고마운 계정이다.

그래서 이 기사를 통해 내가 더맵시 계정에 올렸던 가장 마음에 들지만 조회수는 그렇지 못했던 ootd를 몇 개 뽑아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이를 말미암아 계정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한다.


2. Goodbye @_themepsi

총 6개의 릴스를 뽑았고 간단한 ootd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 굿바이 더맵시

 


1) 제일 처음 올린 릴스로 나레이션 및 자막은 당연히 없고 화면도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그게 포인트라 뽑아본다.

  • 조회수: 321
  • 상의: 웨일스보너x아디다스 티셔츠
  • 하의: 밑단이 포인트인 로에베 청바지
  • 신발: 내 최애 반스 볼트 슬립온 (10년 째 계속 사고 있는데 올 해 단종되었다ㅠ)

 




2) 캡션에 적혀있는 것 처럼 나레이션을 처음 시도한 릴스. 그나마 좀 콘텐츠 구색을 갖췄고 ootd도 맘에 들어서 뽑았다.

  • 조회수: 366
  • 상의: 내 최애 일본 브랜드 캐피탈 티셔츠
  • 하의: 길어서 바닥 질질 끌리는 르메르 진청바지
  • 신발: (또) 반스 볼트 슬립온

 





3) 에어컨 핑계로 이렇게 미친 척하고 긴팔을 입고 온 날도 있어서 뽑아보았다.

  • 조회수: 566
  • 상의: 코펜하겐 브랜드 엠에프펜의 목까지 올라오는 집업 가디건
  • 하의: 또 다른 최애 일본 브랜드 니들스의 “실밥은 뭐니?” 청바지 (잘보면 실밥이 날린다)
  • 신발: 미하라 야스히로의 반스 오마주 신발

 




4) 이 때부터 자막도 시도했다. 이 작업이 진짜 힘들다.

  • 조회수: 403
  • 상의: 꼼데가르송 셔츠 반팔 티셔츠
  • 하의: 진짜 난리난 캐피탈 청바지
  • 신발: 같은 듯 다른 반스 볼트 어센틱

 




5) 나는야 싱가포르에서 울니트를 입는 미친 남자. 포즈도 멋있다.

  • 조회수: 296
  • 상의: 땀띠가 안난게 이상한 르메르 울니트
  • 하의: (또) 로에베 청바지
  • 신발: (또또) 반스 볼트 슬립온





6)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올렸던 릴스라서 뽑았다. 꾸러기룩.

  • 조회수: 584
  • 상의: 노스페이스 퍼플라벨 남방
  • 하의: 한참 옷에 미쳐있었을 때 직접 제작한 디키즈 리워크 바지
  • 신발: 이하 생략 (유독 이렇게 뽑혔는데 반스만 신고 다니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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