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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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지현 @_j_ihn.b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특히나 침대에 눕거나 창가를 멍하니 보며 나에게 생각할 겨를을 줄 때. 그 생각 한편에 왠지 모를 찜찜함이 맴도는 그런 날. 이 미적지근한 찜찜함은 오늘 회사에서 더 쿨하게 말하지 못한 내 모습을 상기하며 혹은 너무 게으르게만 보낸 하루나 오직 일만 하며 보낸 하루를 아쉬워하며 느껴지는 감정인 것 같다. 특히나 해외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이 시간을 더 알차게 써야 해”하는 일종의 강박을 주는 듯하다. 행복한 싱가포르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한편엔 이런 찜찜 미적지근한 것이 뭉근히 끓여지고 있다.
이런 감정을 꽤나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를 다지고 다지는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 나에 대한 실망, 그 누군가에 대한 부러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보통 나에게 이런 순간/ 감정은 잠시 찾아왔다가 ‘괜찮아. 하면되지’하며 급하게 마무리를 짓지만, 그 자기합리화 기법이 먹히지 않는 아주 긴 밤도 존재한다. 이런 여러 날들을 보내며 난 한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날이면 아주 조금의 생산성으로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감정의 근원을 파고 파서 그 해결책을 바로 눈앞에 가져다주지 않아도, 조금의 생산성으로 기분이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다. 사실 다들 알 것이다. 인생에서 어떤 해결책을 바로 눈앞에 가져다 둘 수 없다는걸. 그래서 난 지금 당장 작은 생산성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은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그 시간을 견디고 인내했으니!
아 잠시, 이런 초연한 마음을 가질 때 자주 쓰는 말이 있는데 그건 짧은 에피소드 하나를 들어야 한다. MZ들의 줄임말중 알잘딱깔센 :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라는 이제는 많이 쓰지 않는 신조어다. 어느 날 내 친구 차장님이 “OO아, 이번 건 잘할 수 있지? 알잘닥~” 하며 센스있게 마무리해 주신 업무하달 이후에 우리 사이에선 ‘알잘닥’. 우리끼리말로 “알아서 잘 닥치고해라”가 되었다. 그래서 난 기분이 꾸리꾸리 하다면 그냥 ‘알 잘 닥’하고 소소한 생산성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아주 작은 생산성을 만드는 방법
이번 기사에서는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사람들이 좋은 삶을 유지하는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생산성을 만드는다는 말이 조금 어색할 수 있어, 오늘 하루의 “small win”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면 조금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 몸을 움직이자
아주 간단하고도 노력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것이 바로 운동인 것 같다. 일단 몸을 일으키고 근육을 늘리거나 심장이 꽤 빨리 뛸 정도로 달리고 나면 확실히 개운하다.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면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면 된다. 그럼 그 생각들은 켄달제너 몸매가 된 나를 상상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
*오전 6시 east coast park의 풍경
- 책 몇 페이지라도 넘기자
계속 누워있다 보면 이제 그 재밌던 쇼츠도 재미없어진다. 숏츠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모든 정보들이 물밀듯 들어와 받아들인 정보를 그대로 토해내고 싶은 메슥거림이 느껴질 때가 있다. 유튜버가 리뷰한 여름철 꼭 사야 하는 반팔 티 리스트와 몇 개월 전 엔디비아에 투자했으면 얼마를 벌 수 있었을 거라는 소리들이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숏폼 영상들과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확연히 다른 책을 펼쳐 읽다 보면 뭔가 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는 것인지,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건 완전한 뇌피셜!) 소설책, 시집, 에세이 모두 좋은 것 같다.
- 아주 가까운 미래를 계획해보자
다음날 상쾌한 등교를 준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가방 싸기였다. 왜인지 가방을 아침에 챙기는 날이면 뭔가 꼭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계획하는 아주 가까운 미래라고 한다면, 내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체크리스트 혹은 내일 입고 나갈 옷을 미리 정해두는 것 정도겠다. 난 사실 전날 내일의 할 일과 무드를 계획해두는 것이 다음날 아침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보다 더 상쾌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한 달 전후로 나에게 어떤 일정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중요한 일정, 여행, 친구들과의 약속, 내가 계획한 일의 진행 단계 등을 확인하면서 현재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뭘 했고 뭐가 더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단순히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만 알아도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다. 마치 구글맵을 내비게이터 모드로 보고 있다가, 조금 더 넓은 영역으로 줌아웃을 해서 내 위치를 파악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랄까. 이렇게 되면 내가 언제였던가 저장해둔 맛집을 발견하는 행운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액션을 실행한 것은 아니지만, 계획만으로도 이미 오늘하루는 생산적으로 보냈다.
다른 이의 생각
당신의 하루에 ‘작은 생산성’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답변 1: “음 찜찜한 감정.. 전 회사에서 종일 ‘일’만하고 나왔을 때 뭔가 아쉬운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 저녁 약속이나 해야 할 일이 정해져있을 때는 괜찮은데, 꼭 약속이 없는 저녁에 이런 감정이 느껴진달까요? 그럴 때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와요. 싱가포르 금융지구에서 저희집인 리버밸리까지 걸어오면 40분 정도 걸려요. 꽤 길어 보이지만 저녁에 아무 생각 없이 걸어오면 기분도 좋아지고 금방 도착해요. 걸어오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예쁜 공간을 발견하거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잘살고 있구나!”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약속이 없는 주말엔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요.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을 더 미룰 것 같아서요. 8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면 랩탑을 들고 카페에 가던지 아님 옥상 수영장으로 올라가 태닝을 해요. 8시에 일어나면 한두 가지 할 일을 끝내도 12시거든요. 아직 하루의 절반이 남은 거죠. 그 반나절을 아무것도 안 해도 전 이미 일어나 무언가를 해결했거나 적어도 까매져 있어요 (태닝)”
답변 2: “보통 전 자기 전보다는 주말에 이런 기분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고민이 있어도 잠은 잘 자거든요 하하. 이런 기분이 들 때 전 보통 두 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 같은데, 첫 번째는 기분 릴렉스를 위한 행동을 하는 것 같고 두 번째는 작은 생산성을 만드는 거예요. 작은 생산성이라는 말 참 마음에 드네요. 사실 생산성이라는게 별거 아니거든요. 일단 기분 릴렉스를 위해서 여러 종류의 커피를 잔뜩 넣어놓은 찬장을 5분 동안 바라보고 오늘의 커피를 골라 앉아요. 앉는 장소를 거실에 있는 안락의자를 테라스 방향 쪽으로 돌려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고, 창을 열고 바라봐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만 앉아있어도 기분이 일단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다음 생산성을 만들 차례인데, 전 평소에 요리를 잘 안 하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게 제 작은 생산성인 것 같아요. 항상 레드마트를 시키는데, 기분전환을 위해 직접 장을 보러 가요. 시간과 돈은 더 많이 들겠지만, 주말을 그리고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레드마트 : E-commerce 플랫폼 Lazada내 있는 식료품배달 기능
답변 3: “일단 지금 행동하고 있는 ‘나에게 찜찜함을 주는 행동’을 멈추려고 합니다. 휴대폰을 보다가 자는 걸 싫어하는데, 그런 게으름을 주는 행동을 일단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하루가 조금 아쉽다면, 다음날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전에 운동하고 잔다거나, 책 몇 페이지라도 읽는다든가, 청소를 싹 한다든가”
위 이야기를 공유해준 3명은 모두 각기 다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이 미적지근한 감정에 대한 해결로 ‘작은 생산성’을 만드는 것에는 동감했다. 사실 그 생산성을 만드는 방식이 각각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어찌 됐든 움직이고 무엇인가를 하고 바꾸고 변화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 감정을 소화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한 가지 더 공감한 것은 내 조국에 사는 것보다 외국에 살 때 이런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데 조금 더 알차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직접 타지에서 내가 선택하고 꾸리는 것들, 내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내가 무언가를 놔버리는 순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압박이 아닐까싶다.
기사를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한 선택/환경과 밀당 할 수 있는 이 젊은 시절이 언젠가는 그리울 것 같다는 것이다. 연인과 밀당하는 것처럼 이 삶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끝도 없이 밀당한다. (밀고 당긴다.) 내가 60이 되어서도 하루끝에 아쉽고 미적지근한 감정을 느끼며 날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모든 부부가 밀당하던 연애시절을 이따금 그리워하는 것 같은 감정을, 60살이 된 내가 이 시절을 생각하며 느낄 것 같다. 근시일내 또 이런 찜찜한 감정과 조우한다면,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선택에 감사하며 몇 년 후의 내가 이 시절을 부러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또 다른 작은 생산성을 만들어가야겠다 다짐한다.
(마지막) 다짐하는 곰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