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香然之氣: 홍콩 빌딩 숲 한가운데에서 호연지기를 다지다
Share
Editor: 박지현 @_j_ihn.b, 황남규 @nwangerd, 설혜수 @hyssl.kr
side A
223: “그래서 너네가 왜 ybp인데? 파산 안했잖아. ybp가 왜 broke 하다고?”
663: “나 이 질문을 되게 많이 듣는 것 같아.”
페이: “우리 broke 했잖아.”
663: “그건 맞지.”
223: “그것도 맞긴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홍콩을 놀러오고 이런건 사전적 의미의 broke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663: “그래서 우리가 최근에 이름을 바꿨어. Young broqué professionals로.”
223: “진짜?”
페이: “응 진짜. 네가 말한것 처럼 우리가 진짜 사전적 의미의 파산을 한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파산을 피하면서 최대한 멋지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
663: “브로케~~”
(정적)
663: “여하튼, 우리가 magazine ybp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름으로 표현하자면, broke보다는 broqué 가 더 맞다고 봤어. 그리고 이 이름 하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앞으로 담아낼 건지 한마디로 정리할 필요성도 느꼈고.”
223: “한마디로 정리해 봐봐.”
페이: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음… 일도 삶도 잘 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지만, 그 과정을 동시에 즐기는 젊은이들에 대한 매거진… 이라고 해야하나?”
663: “오 좋은데?”
223: “아하.”
페이: “일과 커리어를 잘 가꾸어 나가고 싶고, 동시에 일 외의 삶도 재미있고 열심히 살고 싶은거지. 그러니까 혁오 콘서트 보러 홍콩도 온거고.”
663: “우리 같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때로는 정보를 얻고 도움도 받는 그런 이야기들을 앞으로 전달하고 싶어! 그리고 왜 ‘워라벨’ 이라는 단어가 한 때 굉장히 유행했었잖아. 지금도 여전히 많이 쓰이는 단어고. 근데 나는 이 단어가 사실 그렇게 와닿지가 않아. 밸런스가 대체 뭔데? 나는 둘 다 잘 하고 싶어. 적당히 말고.”
223: “그러다가 broqué 하는거구나?”
663: “그렇지. 너도 이제 ybp야.”
side B
홍콩하면 떠오르는 야경과 함께 ‘바’ 씬이 유명한데, 세계적인 칵테일 대회에서 수상한 바텐더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서양 문화가 교차해오면서 전통적인 홍콩 문화와 서양의 트렌디한 감성이 결합된 독특한 인테리어와 서비스가 돋보인다. 예를 들어, 오래된 건물이나 창고를 개조한 빈티지한 바들이 그렇다.
이번 홍콩 워크샵에서 ybp도 아시아 Best Bar 50위 안에 오른 바들을 두 곳 방문할 수 있었다. Four Seasons 호텔 안에 위치한 ARGO가 한 곳이었고, Penicillin이 다른 한 곳이었다. 그중 후자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덧붙여 본다.
@Penicillin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올라가다 골목길 사이사이로 지나다보면 하입을 몇 스푼 넣은 카페와 바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Penicillin도 그렇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얀 타일의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조명의 공간이 맞이하고, 고개를 돌리면 정반대의 어두운 조명 아래 실험실에서 만든 병들을 벽에 진열한 바 공간이 나온다.
이 곳에서는 ‘One Penicillin, One Tree’ 프로젝트를 운영하는데, 스페셜티 칵테일을 주문하면 보르네오의 칼리만탄 열대우림 지역에 새로운 나무 한 그루가 심어진다. 필자는 이 스페셜티 칵테일 리스트 중 피스타치오 페이스트 버번이 들어간 the slow grind를 주문했다. 진한 에스프레소와 견과류 맛이 나는 디저트 느낌의 잔이었다.
한 잔을 거의 다 비웠을 때쯤 직원분이 오셔서 우리가 단체로 입고 있던 magazine.ybp 티셔츠에 대해 물어보셨다. 우리 얘기가 흥미로웠던건지, 바 뒤쪽에 있는 비밀의 방으로 인도하며 이 바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셨다. ‘One Penicillin, One Tree’ 프로젝트에서도 언뜻 알 수 있듯 이 바는 지속가능한 바를 지향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비밀의 방은 다른 식당에서 남은 신선한, 그렇지만 곧 가치가 없어질, 재료들을 가져와 사이다로 발효시키는 공간이었다. 병마다 raddish, apple cider 등의 라벨이 붙여져 있었다. (이 방에서 만들어진 사이다도 한잔씩 주셨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먹는 잔이라 더 달았다.)
알고보니 인테리어에 쓰인 재료들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가 앉아있던 나무 테이블도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저 멋있는 바로 기억되었을텐데, 얘기를 듣고 다시 보니 지속가능한 바도 다른 바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놓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원하는 하입을 챙기기 위해 있었을 무수한 갈등과 결국에 포기하지 않았을 시간들이 이 바에서의 경험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문제의 ybp 티셔츠
번외.
사실 홍콩 여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2020년 월드 투어 공연 영상을 본 후로 ‘혁오 콘서트 가기’가 버킷리스트에 올랐고, 올해 선셋롤러코스터와 함께 발매한 AAA 앨범을 자주 들으며 ‘콘서트는 안 하나’ 생각할때쯤 AAA 아시아 투어를 알리는 포스트가 올라왔다. 비행기표를 사지도 않고, 공연이 수요일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않은채 공연 티켓부터 사버리는 충동을 저질렀다.
그래서 공연은 어땠냐고? 결론부터 얘기하면 애호하는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나누며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의 음악도 너무 좋았지만, 어째서인지 공연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국경을 넘어 보러온 사람들도 있었을테고, 정장 차림으로 일과를 마치자마자 공연장으로 달려왔을 것 같은 사람들도 보였다. 모두가 단차 하나 없는 넓은 공연장을 가득 매워 저마다의 리듬으로 공연을 보는데 다른 이들의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를 좋아하는 마음의 기운까지도 전달되는 것 같아 행복함이 배가 되었다. 애호하는 마음을 즐길 수 있는 낭만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지.
이번 콘서트는 또 ybp를 포함한 지인들과 함께 해 특별했다. 저가항공사의 만행으로 우리가 산 티켓의 도착시간이 갑자기 공연 시작 시간으로 지연되었다. 콘서트장에 갈 차림으로 백팩을 들쳐매고 출발해 홍콩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앞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공연장까지 뛰었다. 비록 앞부분의 공연을 놓치긴 했지만 그 시간들까지도 개인적인 혁오를 애호하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문제의 2020 월드 투어 공연 영상:
[LIVE] 혁오 (HYUKOH) _ Wanli万里 @ HYUKOH 2020 WORLD TOUR [through love] - SEOUL
[LIVE] 혁오 (HYUKOH) _ New born @ HYUKOH 2020 WORLD TOUR [through love] -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