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구독자 사연: 취향 탐구법

Editor: 박지현 @_j_ihn.b,  황남규 @nwangerd, 설혜수 @hyssl.kr


ybp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ybp들이 요즘 하는 생각에 대해 들어보고 싶었다. 현생 이슈로 기사를 공유할 수 없는 출장 기간을 활용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진행하였고 여러 재밌는 질문을 들었는데 그 중 한 질문은 쉽게 답변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취향마저 강요되는 요즘 세상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갖는 법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이 질문을 각자의 경험을 포함한 기사로 풀어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럼 우리의 취향도 보일테니 그 또한 재밌게 느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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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가진 사람이라. 취향은 선호나 특별히 끌리는 것들을 말한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사람마다 느끼고 선택하는 기준이 다른데, 이게 바로 취향에서 비롯된 것들이랄까. “난 이거 정말 좋아해!” “이건 내 취향이야!” 라고 이야기를 할 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거나 나를 은근히 드러낼 수 있다. 취향을 통해 어느 정도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무향()인 사람인 내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몇 년 전의 다이어리에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자’라는 목표가 있을 정도였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주체성이 생긴 대학교 이후부터 취향이란 걸 찾아야 되겠다 마음먹었다. 이게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꽤 공감을 사는 주제였던 것 같은데,  한 친구의 생일 케이크를 사려는데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가 뭔지 도통 모르겠었다. 그래서 사온 초콜릿 시폰 케이크를 두고, 앞으로는 서로 기억해 두자며 짜내고 짜낸 케이크 취향을 말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어떤 케이크를 가장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한번도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케이크든지 상관없었지만 그때부터 호두파이를 제일 좋아하기로 했다. 


호두파이를 대뜸 취향으로 고른 그때의 나와는 다르게, 조금은 더 경험한 지금의 내가 취향을 갖는 법은 취향이 바뀌는걸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선호를 고심해볼 여러 경험과 물리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다. 취향을 갖기 위해선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선호를 가만히 고심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게 가장 좋은지 경험하는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다. 좋아하는 영화를 찾으려 해도 많은 영화를 봐야 취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기’이다. 취향이 있는 사람들은 멋있게 느껴진다. 특히나 그들이 ‘왜 그걸 좋아하는지’ 까지 듣는다면 그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는 것 같다. 다만 꼭 모든 이유가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취향은 그 사람의 문화적, 경제적, 감정 등의 여러 요소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모든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 ‘그냥’ 보다 완벽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좋아한다고 해도 충분히 취향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내가 왜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다던가, 혹은 “그냥 좋아해!” 라고 당당하게 선호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취향을 가진 세련된 현대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무리하며 드는 생각은 취향이 대단할 필요도 대중적이지 않아 걱정할 필요도 죽을 때까지 호두파이만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데 느끼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철학을 재밌는 주제들로 나눠 펼쳐보며 다양한 나를 발견하고 공감해나가는 게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인 것 같다. 단순히 그게 케이크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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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ybp가 첫 잡지는 아니다. 8년 전, “내가 오타쿠임을 자랑스러워하자" 라는 일념 하나로 만든 잡지가 하나 있다. 이 잡지는 놀랍게도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 사실은 정말 멋진 사람들이 더욱 잘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관심있는 사람은 인스타에 @magazine_nerd 팔로우. 혹시 이미 팔로우하고 있다면 당신은 멋쟁이).


그때 만든 잡지의 발간 이유와 그 이름에 직접적으로 나와있는 것처럼, 나는 예전부터 비교적 취향이 뚜렷해왔던 사람이다. 그리고 뚜렷한 취향에 대해 남들 의견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입덕시키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반지의 제왕 만세!!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완벽하게 적절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완전히 T에 가까운 사람이라  사회화된 공감을 장착한 답변도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답변의 궤를 달리하여, 뚜렷한 나만의 취향을 가졌을 때 오히려 감안해야만 하는 단점들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1. 생각보다 논쟁을 많이 하게 됨: 나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지게 되면 종종 논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특급 주술사가 되기 때문에, 내 영역전개에 맞서서 영역전개를 같이 펼치는 사람들, 또는 아예 내 취향을 이해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천여주박과는 필연적으로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2. 몇몇 취향은 밝히기 부끄러울 수 있음: 안타깝게도 몇몇 취향은 ‘오타쿠'라는 단어로 무시를 당하기 마련이다.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그렇고, 이 역시 ‘취향을 강요하는' 상황과 어느 정도 통하는 상황인 것 같다. 이건 나 같은 pro 논쟁러 오타쿠들이 더 많아져야 해결되는 문제라 뚜렷한 해결 타임라인이 없는 단점이다.
  3. “쟤 또 저런다” 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음: 내가 살면서 되게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인데, 하도 주변에 전파하며 고집부리고 다녔더니 “쟤 또 저런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20살 새내기 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점심에 피자를 먹으러 가고 싶었지만 과 친구들이 뼈해장국을 먹으러 간다길래 “그럼 너네 그거 먹으러 가. 나는 피자 먹으러 갈게!” 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했었다. 그때 전주에서 갓 올라온 친구 한 명이 속으로 “서울 애들은 다 저런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그 친구와는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고 나보다 더한 고집불통이 되었다.
  4. 필연적으로 돈을 많이 쓰게 됨: 이 부분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나는 종종 뚜렷한 취향 없이 누구와 어디서든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물론 이 점이 부러워서 내 취향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각각 장단이 있기에 꼭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려고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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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법론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세상에 발 담가 보는 것이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는 취향을 강요받는 편에 가까웠다. 그 당시에는 K팝 가수, 얼짱과 인터넷 쇼핑몰 모델을 필두로 만들어지는 ‘유행'에 민감했다. 그들이 입는 옷 (하이탑 운동화, 스키니진, 카키색 야상과 형형색색의 H라인 스커트를 기억하는가…), 부르는 노래, 화장하는 법이 멋있어 보였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획일화된 미를 선망했다.


2019년 2학기 이탈리아 밀라노로 다녀온 육개월간의 교환학생은 ‘취향’을 대하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나의 아파트에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고 방만 각자 쓰는 flat share 형태로 거주했는데, 각기 다른 국가에서 밀라노로 와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는 다섯명의 다른 여자들과 살았다. 저녁 시간쯤 주방으로 하나둘 모이면 같이 혹은 각자 요리를 해 먹거나 집 앞 4유로짜리 피자집에서 피자 박스를 테이크아웃 해오곤 했다. 저녁 식사 테이블에는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나 패션쇼, 클럽에서 땀 나게 춤추게 했던 음악 얘기, 각자의 고향에서 일어나는 이슈들이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외우게 되는 치즈 종류와 생존 이탈리아어가 늘어가는 것과 비례하게, 여러 많은 세상의 문을 열어 접하게 되었다. 아멜리아 렌즈와 페기구를 이야기하다 테크노 음악과 페기구가 나오는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보다 며칠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들에 관한 얘기에서 시작해 그들의 고향을 방문해 보기도 했다. 이 시간이 처음 나의 ‘호’와 ‘불호’를 만들어주었다고 회고한다. 물론 좋은 경험도 있었고, 헛수고했다 싶은 시간도 있었다. 이걸 만드는 과정이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이 과정에는 많은 질문들이 지나갔다. 무엇이 나를 들뜨게 만드는지, 이건 왜 멋있다고 느끼는지, 다음에 다시 절대하지 말 것은 무엇인지 등 말이다. 놀고만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잘 대화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요즘은 ‘나는 날 위해 뭘 해주고 있지?’ 질문한다. 좋아하는 음악과 새로운 음악을 듣고 있는지, 옷장에 옷이 잘 다려져 걸려있는지, 새로 뜨는 브랜드는 무엇인지 찾아보는 일은 당장 내가 먹고사는 대세에 영향을 주는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다. 나의 ‘호’, ‘불호'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주고,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마모되어도 즉시 나를 다시 채워줄 수 있는 일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취향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쌓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도전들, 어떨 때는 강요 된다고 느껴지는 대세의, 어쩌면 조작된, 취향들도 시도해 보자 (why not). 다른 세상에 사는듯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기 위해 ‘이게 왜 좋은지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의 시간을 보내보자. 그러면서 나의 취향의 층이 쌓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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