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아티클의 tldr은 “남규쿤의 음악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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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황남규 @nwangerd
2018년 인턴십 도중 휴가를 내고 싱가포르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나중에 이곳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영어가 통하고 깔끔한 도시에 야자수가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하며 3박 남짓 휴가를 보냈었다. 그때 여행에서 아직까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는데, ‘스쿠트 항공(*싱가포르 항공에서 운영하는 LCC)’ 비행기의 과격한 랜딩에 깜짝 놀랐던 순간과, 입국할 때 적는 카드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던 한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약 소지자는 사형에 처합니다.”
그렇다. 싱가포르는 실제로 사형 집행을 하는 국가이다. 이런 강력한 규제와 질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가 되었고, 나는 이 싱가포르에서 벌써 2년 넘게 외화를 벌며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 싱가포르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젊은 싱글 남녀가 살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한 나라라는 것이다.
60년 남짓의 짧은 역사와 산 하나 없이 평평하고 좁은 ‘시국'에서 오는 답답함은 젊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 및 문화생활의 부재로 이어졌고, 그 결과 “아 지루해"를 입에 달고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지루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2명의 동료(라고 쓰고 친구라고 읽는다)들과 재밌는 걸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바로 magazine ybp이다. magazine ybp는 Young Broqué Professionals 약자로, 일도 삶도 잘하고 싶어 고군분투하지만 그 과정을 동시에 즐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 Broqué (Broke but not like poor broke)
따라서 magazine ybp는 우리 3명, 그리고 비슷한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견디며 살고 있는지 공유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매거진의 첫 아티클에 무엇을 적을지도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나 퇴근하고 보통 뭐 하지?"
바로 이것 때문에 휴가와 사형, 마약에 대한 장황한 도입부로 글을 시작했는데, 이번 아티클이 나라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과 내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인 바이닐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이닐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입문용 오디오 테크니카 턴테이블과 동료가 싸게 넘긴 마샬 스피커 조합으로 퇴근 후 바이닐을 트는 것이 싱가포르 생활의 지루함을 버티기 위한 내 루틴 중 하나다.
예전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는 꼭 앨범 단위로 듣곤 했는데, 자연스럽게 아끼는 앨범에 대한 소유욕이 생겼고 그 앨범들을 바이닐로 찾고 구매하는 것으로 이 소유욕을 해소하게 되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싱가포르는 바이닐 시장이 많이 발전되어 있지는 않다. 몇 개의 전문 숍들이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엄청 다양한 국가의 바이닐을 취급하지는 않는다. 싱가포르가 영국 및 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참 아이러니한데, 내 추측으로는 로컬 음악 시장이 매우 작고 나라의 역사 자체가 짧은 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정 찾기 어려운 바이닐들은 한국에 들어갔을 때, 또는 일본에 놀러갔을 때 사오는 형태로 악조건을 극복하며 열심히 소장 바이닐 목록을 늘려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아티클에서는 내가 싱가포르에서 모아온 바이닐 중 특히 애정 하는 바이닐 몇 가지를 뽑아서 소개하려고 한다. 그렇다. 우리 매거진 첫 아티클의 tldr은 “남규쿤의 음악 추천”이다.
비슷한 장르 별로 2장의 앨범 씩 선정하였고, 아티스트 및 앨범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함께 어디서 구매하였는지를 명기하였다. 더불어 각 앨범의 제목에는 해당되는 유튜브 링크를 걸어두었으며, 아티클 마지막에는 앨범 전체를 포함한 스포티파이 및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도 첨부하였다. 그럼, Here we go.
1. Shore by Fleet Foxes
- Genre: Folk / Indie Rock
- Released: 2020
- 2LP / Bought from Retrophonic Records (SG)
- About: 3집 발매 후 약 3년간의 공백 뒤 발매된 Fleet Foxes의 4집 앨범이다. Fleet Foxes는 리더 Pecknold를 중심으로 결성된 시애틀 베이스의 포크/인디 록 밴드인데, 60/70년대 포크와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를 버무린 목가적인 사운드와 깊은 은유가 담긴 가사가 합쳐져 1집부터 단단한 팬층을 구축하였다.이번 4집은 전작들의 공통적인 주제인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분명 더 고차원적인 내용인데 내 표현력의 한계다)을 Pecknold 본인에게 흐른 시간만큼 더 완숙해진 자세로 수용하고, 자연에서 빌려온 소리와 함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자세를 보여주는데 앨범을 듣는 내내 마음이 따닷-해진다. 퇴근 후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때 꼭 한 번씩 듣는 앨범.
2. Lonerism by Tame Impala
- Genre: Psychedelic Rock / Neo-Psychedelia
- Released: 2012
- 2LP / Bought from Retrophonic Records (SG)
- About: 2000년대 이후 사이키델릭 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인 Kevin Parker가 이끄는 1인 밴드 Tame Impala의 2집 앨범 Lonerism을 록 장르의 두 번째 앨범으로 뽑았다. Kevin Parker에게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안겨준 앨범이며 개인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록에 입문시켜준 앨범이기도 하다. 비틀즈가 떠오르는 60년대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신스가 합쳐져 탄생한 독창적인 트랙들이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귀를 행복하게 해준다. 오늘 뽑은 6장의 앨범 중에 가장 “남에게 입문 추천 하고 싶은 앨범”이며, 혹시 생각 있으신 분들을 위해 내가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을 링크로 남겨둔다.
3. Ego Death by The Internet
- Genre: R&B / Neo-Soul
- Released: 2015
- 2LP / Bought from Vinyl&Plastic (KR)
- About: 다음으로는 알엔비 장르에서 2장의 앨범을 뽑았으며 그중 첫 번째는 밴드 The Internet의 3집 앨범 Ego Death이다. 지금까지 두 번이나 내한을 온 밴드라 한국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밴드인데, 최근에는 앨범 단위의 활동보다는 밴드 소속 기타리스트 Steve Lacy의 단독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Ego Death는 앞서 소개한 앨범들처럼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 앨범인데 그래미 노미네이션이 되기도 하였다. 이 앨범에는 두 가지 독특한 장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보컬 Syd의 가사와 목소리의 조합에서 오는 스토리텔링과 (듣다 보면 마치 내가 사랑과 이별을 겪는 것 같다), 네오 소울이라는 장르적 바탕 위에서 힙합, 심지어는 사이키델릭 록적인 요소까지 잘 곁들여진 사운드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려나…?
4. Here by Alicia K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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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re: R&B
- Released: 2016
- 1 LP / Bought from Disk Union (JP)
- About: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선정한 앨범인 Alicia Keys의 6집 앨범 Here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앨범이다. 심지어 리드 싱글 ‘In Common’은 앨범과 결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디럭스판에만 실리는 보너스 트랙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했다. 더불어 앨범에서 가져가고 있는 메시지들이 엄청 호소력이 짙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유는 (또) 두 가지인데, 뉴욕이 절로 떠오르는 Alicia Keys의 멋진 보컬과 마치 한자리에서 만든 듯한 유기적인 사운드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앨범을 들을 때마다 소싯적 뉴욕에서 보냈던시절이 떠오른다. 특정 추억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은 음악으로는 할 일 다한 것 아닐까…? 혹시 뉴욕을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이 앨범을 꼭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5. Watermark by E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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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re: New Age / Ambient / Celtic
- Released: 1988
- 1LP / Bought from Retrophonic Records (SG)
- About: 마지막으로 선정한 장르는 뉴에이지/사운드트랙으로, 그중 첫 번째 앨범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가수 Enya의 1집 Watermark를 뽑았다.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Enya의 작품들은 내 음악 취향이 만들어지는데 시작점 역할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어머니의 ‘최애’ 아티스트였고, 덕분에 나도 자연스레 Enya의 음악들을 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마도 그 결과 몽환적인 멜로디를 가져가는 장르와 작품들을 좋아하는 지금의 음악 취향을 가지게 될 것이 아닐까? Enya는 ‘반지의 제왕’ OST인 ‘May It Be’,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엔딩곡인 ‘Wild Child’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가지고 있는데, 1집 Watermark에는 한국 CF 단골손님인 ‘Orinoco Flow’가 대표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Enya 하면 떠오르는 사운드가 앨범 전체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8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Enya의 대표 앨범이다.
6. The Classics by Hans Zimmer
- Genre: Soundtrack
- Released: 2017
- 2LP / Bought from RetroCrates (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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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최근에 Hans Zimmer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공연을 보기 위해 두바이로 3박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Hans Zimmer의 공연을 가는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인데, 처음 갔던 한국에서의 2019년 공연보다 퀄리티 면에서 훨씬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그처럼 정기적으로 오케스트라 월드 투어를 진행하는 영화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가가 앞으로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만큼 Hans Zimmer는 스코어 작곡가로는 독보적인 위상과 인기를 가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듄’부터 ‘인셉션’, ‘인터스텔라’와 같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들, 그 이전에는 ‘글래디에이터’, ‘라이언 킹’까지 오랜 기간 다양한 할리우드 작품의 사운드를 담당해온 Hans Zimmer는, 내가 영화를 시청하며 가졌던 경험들을 그 이후까지 연장하여 되새김질할 수 있게끔 해준다. The Classics 앨범은 Hans Zimmer의 히트 스코어들을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클래식으로 편곡하여 담아낸 앨범이다. 앨범을 들어보고 어느 순간 반복 재생하게 되었다면, 라이브 공연도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웬만하면 Hans Zimmer 사단이 전부 참여하는 유럽 및 두바이 공연으로 가는 것이 좋다).
*앨범 전체 spotify playlist - link
*앨범 전체 apple music playlist - link